INTERVIEW

Q. <무브 포워드>는 어떻게 구상하게 된 작품인가. 
A. 작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갔는데 몇 년 만에 친척들을 만나니 정말 좋았다.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 떠나기가 싫었다. 그래도 일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내가 언제까지나 가족들 곁에서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계시던 부산에서 울산으로 이동하는 중에 시나리오를 구상하게 됐다.

Q. 영화를 통해 여성의 삶, 꿈, 가족 내 성역할, 돌봄노동 등 다양한 키워드를 도출해낼 수 있을 텐데, 특히 어디에 방점을 두고자 했나?
A. 가장 중점을 두고 싶었던 건 여성의 삶과 꿈이다. 제 영화를 보신 분들은 가족 내 성역할이나 돌봄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 아무래도 그게 표면적으로 드러나서 그런가 보다. 물론 그 주제들도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생각하긴 했지만, 너무 돌봄노동으로만 쏠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미숙에게만 초점이 맞춰지니까. 

Q. 이 영화에서 꼽을 수 있는 또 다른 키워드가 ‘모녀 관계’다. 모녀 관계는 할 말이 많은 소재인 만큼 다른 작품들에서도 숱하게 다뤄졌는데, <무브 포워드>에서는 어떤 부분을 강조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나. 
A. ‘함께 살아왔지만 그들의 세대와 내 세대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살아온 방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미숙이 결국 시연을 보내주긴 하지만, 시연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연도 미숙에게 ‘엄마는 왜 그러고 있는데?’라며 끊임없이 묻지 않나. 하지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음에도 모녀는 대부분의 경우 서로에게 가장 의지가 되는 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Q. 시나리오 단계에서 생각해둔 미숙의 전사가 따로 있나. 
A. 미숙과 미숙의 남편, 시연은 원래 함께 살았다. 그러다 직장 때문에 미숙과 미숙의 남편이 다른 지역에서 10년 정도 일하며 떨어져 살게 됐고, 그 사이에 시연은 할아버지에게 맡겨진 거다. 기간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때까지라고 설정했다. 그래서 미숙이 영범을 그렇게 돌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필름X젠더 제작지원작 <무브 포워드> 스틸컷

Q. ‘부재’로써 시연의 아빠(미숙의 남편)를 그린 이유는 무엇인가.
A. 아빠가 등장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시나리오를 고치면 고칠수록 왜 드러나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아빠는)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등장시킨다 하더라도 빌런으로밖에 쓸 수 없을 텐데, 인물을 그렇게 기능적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 

Q. 극 중에서 시연이 미숙에게 왜 혼자 고생하냐고 하니까 미숙은 “나는 이렇게 살아왔어”라고 말한다. 그때 미숙의 감정은 어땠을까. 그 이야기를 들은 시연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A. 최종 상영본에서는 “엄마는 이렇게 살아왔어”라고 말한다. 이 대사에 대해서는 미숙 역을 맡은 금순 배우님과도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난 이렇게 살아왔어”와 “엄마는 이렇게 살아왔어”의 대사 톤이 완전히 달랐는데, 왜 차이가 나는지 여쭤봤다. “엄마는 이렇게 살아왔어”는 시연의 엄마로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던 것이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왔어”라고 하면 좀 더 고집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후자의 경우 대사 톤이 차가웠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어”라는 엄마의 말을 들은 시연의 심정은 어땠을까.) 답답하지 않았을까. 내가 이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을 것 같다. 딸로서 아는 부분도 있겠지만 모르는 것은 또 얼마나 많겠나. 그래서 (“왜 엄마 혼자 고생하냐”는 질문을 한)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을 것 같다. 

Q. 미숙의 삶은 ‘주체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선택한 삶이기에 주체적인 것이라고 봐야 할지, 혹은 선택지가 없었기에 그러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A.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미숙의 삶이 어떻게 주체적이라고 할 수 있겠나. 하지만 미숙의 입장에서는 ‘이건 내가 선택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연 아빠와의 결혼도 미숙이 선택한 것이고, 시아버지 집에 들어가 살겠다고 한 것도 그의 선택이다. 그게 싫었다면 이혼하거나 도망쳤겠지. 그래서 어느 정도는 미숙의 선택이 나름의 주체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Q. 미숙과 현정은 비슷한 세대의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삶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둘의 삶을 다르게 설정하여 대비를 보여준 이유는 무엇인가. 
A. 우리가 윗세대에서 볼 수 있는 여성상은 두 개밖에 없었던 것 같다. 엄마처럼 살거나 커리어 우먼 같은 삶을 살거나.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2~30대 여성이라 할지라도 미숙처럼 살 수도 있고, 현정처럼 살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선택지가 두 가지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시연이 해외로 떠나는 걸 보여줌으로써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필름X젠더 제작지원작 <무브 포워드> 스틸컷

Q. 시연은 할아버지를 간호하는 엄마를 혼자 두고 유학 가는 것에 죄책감과 부채감을 느낀다. 시연이 ‘아들’이었어도 과연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이 죄책감 또는 부채감의 정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여성이기 때문에 죄책감을 더 크게 느꼈다고 생각한다. 내가 엄마 곁에 있으면 할아버지 간호를 도울 수 있겠지만, 내가 없으면 엄마 혼자 해야 되지 않나. 돌봄노동이라는 게 여성들에게만 부여되고, 그래서 책임감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근데 그것이 원래 갖고 있는 본성인지, 아니면 사회가 주입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Q. 시연은 할아버지 병실에서 고모의 이야기(동생들 뒷바라지를 그만두고 대학에 들어간 것)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A.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고모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구나. 그 시대에 그런 선택을 한 건 정말 힘든 일이었겠다. 근데 해냈네. 그럼 나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겠지. 반대로는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어쨌든 고모는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잖아. 그래서 엄마가 할아버지 간병을 하고 있는 건데?’라고 생각하며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Q. 시연은 병실에 누워있는 할아버지에게 뉴질랜드에서의 스카이다이빙 추억을 이야기한다. 그때 시연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그 이야기를 왜 할아버지에게 했을까?
A. 어쨌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고 가는 것이잖나. 그렇다면 적어도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 죄송하지만 저는 떠날 거예요. 옆에 있어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라는 이야기를 시연만의 방식으로 한 것 아닐까.

Q. 엄마와 함께 짐을 싸던 시연은 “나머지 짐은 내가 갖다줄까?”라고 묻는 엄마에게 “정말?”이라고 답하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당시 시연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 장면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A. 시연은 ‘엄마가 진짜 올 수 있을까? 꼭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엄마가 가부장에서 제발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지. “나머지 짐은 내가 갖다줄까?”는 초고에 없던 대사였다. 금순 선배와 첫 미팅을 하면서 ‘이 부분 대사를 바꾸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물었더니 ‘내가 갖다주면 되지’라고 하셨다. 그게 정말 좋았다. 미숙이 이렇게 얘기했기 때문에 시연이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 자체가 ‘나도 사실은 여기서 벗어나고 싶고, 벗어날 의지가 있다’고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시연의 반바지를 들어보는 미숙의 표정에서 부러움과 질투 등 다양한 감정이 읽힌다. “나도 여행 다니는 거 좋아했는데”라는 대사도 그렇고. 
A. 미숙은 시연이 떠날 것이란 걸 알고 있었고, 떠나보내 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던 거다. 그래도 짐을 쌀 때쯤엔 ‘얘가 진짜 가는구나, 잘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상황을 장난스레 넘긴 것 같다. 어찌 됐든 미숙도 처음부터 이렇게 살아온 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딸의 속은 뒤집어졌겠지.

필름X젠더 제작지원작 <무브 포워드> 스틸컷

Q. ‘무브 포워드’는 시연과 미숙 둘 다에게 해당되는 말인 것 같다. 제목이 갖는 의미에 대해 말해준다면.
A.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 이 문장을 영화의 기획의도로 설정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아픔을 겪지만 그 아픔에 머무르며 고통을 겪는 것은 선택하기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가족 간에 또는 자신도 합일될 수 없는 가치관에 의해 갈등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여성의 경우 젠더 개념에 의해 만들어진 내적, 외적 허들로 갈등을 경험하는 경우가 유독 많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아픔에 고통받지 않는 방법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Move Forward)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그래서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 또한 자기 삶에서 허들을 넘어 느리더라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Q.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이고, 그 장면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가.
A. 머윗대를 다듬으면서 미숙이 “엄마는 이렇게 살아왔어”라고 하는 장면. 간접적이지만 영화와 가장 잘 닿아있지 않나. 엄마와 딸의 관계를 그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Q. 이 영화를 누가 봤으면 좋겠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라나.
A. ‘무브 포워드’를 하고 싶은데 고민되는 분들, ‘앞으로 나아가고 싶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공간에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본 분들이 보면 더 와닿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