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나는 정신병자다”라고 말해도 괜찮은 세상을 위해

<빨간줄> 윤누리 감독

퍼플레이 / 2024-04-05



#세상을_바꾸는_여자들
2024.3.28.|윤누리 감독을 만나다


정신과 가는 거 좀 무섭지 않아? 가서 진짜 문제가 있다고 하면 어떡해. 예전에는 그런 말도 있었잖아. 정신과 기록은 서류에도 빨간 줄 남는다고. 지금은 헛소문인 거 알지만 그래도. 아,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야. 마음이 아프면 가는 거지. 왜, 요즘은 마음의 감기라고들 하잖아.

윤누리 감독의 다큐멘터리 <빨간줄>에는 속삭이는 목소리가 등장해 계속해서 말을 건다. 이것은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외부의 혐오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정신병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정신질환자인 당사자에게도 내면화되어 마음을 이리저리 괴롭힌다. 감독은 자신의 정신병 경험을 토대로 일상을 담담히 이야기하고, 입원했던 때의 기억을 고백하며, 종내에는 정신병자라는 정체성을 인정하고 선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것임을 말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은 가슴 한편에 묵직하게 남았다.

<빨간줄> 스틸컷

-이 작품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당시 사적 다큐멘터리를 끝낸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작업을 진행할수록 가장 시급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됐고, 그러다 보니 다시 저에게로 돌아오더라고요. 그래서 정신병 경험을 이야기해야겠다 결심하고 시작하게 됐습니다. 

-영화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는데 이러한 사운드를 통해 감독님이 의도한 효과는 무엇인가요?
정신질환자들에게 혐오적으로 혹은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는 문장들로 구성했어요. 이러한 문장들이 당사자에게 어떤 감각으로 다가가는지를 상상해보도록 만들고 싶었죠. 저의 경험상 무언가가 침투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제가 실제로 겪은 증상을 사운드로 구현하려고 했죠. 그 증상을 겪을 당시에 타인이 나를 비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 같다고도 느꼈는데 그 지점이 제가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외부의 혐오가 결국에는 당사자에게 내면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영화에는 나의 모습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대신에 목소리나 다른 풍경들로 채워집니다. 화자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이 영화를 통해 제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혐오의 내면화였어요. 당사자가 스스로에 대한 혐오를 내면화하거나 자신과 외부를 경계 지어서 외부의 혐오를 내면화하는 과정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것이었어요. 어떤 건 정상이고 어떤 건 비정상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이 한 사람 안에서 일어날 수 있고,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직접 등장해서 정신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그동안 경험해왔던 일상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구성하는 게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낮’ 파트에서는 일상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일기 같은 형식을 취했고, ‘밤’ 파트에서는 정신병의 증상적인 부분을 드러낼 수 있는 요소들을 넣었어요. 덧붙여,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제 얼굴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어요.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자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의 행동과 말투를 정신질환자의 것으로 규정하려고 하는 혐오가 아직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감독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정신질환자에 대해 사회가 갖고 있는 차별과 혐오를 당사자 또한 내면화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 사회는 그리고 또 개인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일단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다른 차별들과 마찬가지로 정신병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 사회적으로든 개인 스스로든 인정해 나가는 것이 첫 번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말과 행동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려는 태도를 성찰해볼 필요가 있어요. 물론 그게 어떤 증상에서 비롯되는 말과 행동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런 부분을 희화화하거나 농담거리처럼 이야기하는 것들이 일상적인 대화에서 아직도 많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그런 부분을 계속해서 성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신병을 왜 몸의 질병과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하지 않는가에 대해서도 항상 의문을 갖고 있는데, 신체의 질병과 정신의 질병을 동일선상에 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봐요. 

윤누리 감독 ⓒ퍼플레이

-영화의 말미에 나오는 내레이션도 마음을 울렸습니다. “나는 여전히 약을 먹고, 가끔 말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살피지 못한다. 나를 둘러싼 작은 상자에 갇혀 몸을 움직인다. 나는 정신병자다”라고 선언을 하잖아요. 이 문장을 쓸 때 감독님의 심정은 어떠셨는지, 이 말이 관객에게 어떻게 가닿기를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영화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다 극복한 건 아니에요. 여전히 증상을 겪고 있음에도 이야기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것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또 정신병자라는 말 자체가 혐오의 단어가 되어 버린 사회에서 이것을 그대로 내뱉는 행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 작품을 통해 정신병자라는 정체성을 온전히 인정하고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나는 정신병자다’라고 말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제안을 드리고 싶고, 저의 생각과 의도가 관객분들에게 잘 전달되길 바라요.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요?
두 개 장면이 있어요. 하나는, 카페 벽에 호스가 박혀 있는 컷이에요. “목구멍에 걸린 평범한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붙는 컷인데, 그 이미지가 의미를 잘 전달해준 것 같아요. 다른 하나는 밤 신이에요. 처음에는 골목길 벽이 멀쩡하다가 카메라가 돌아가면서 흐려지고 울렁울렁하거든요. 그런 감각이 증상적으로 어지럽고 답답하다고 느꼈을 때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장면이 제 ‘웃음벨’ 중 하나기도 해요. (웃음) 그 장면을 밤에 혼자서 촬영했는데 남들이 봤을 땐 골목길에서 혼자 카메라를 돌리고 있는 사람으로 보였겠죠? 그래서 그 컷을 보면 그때가 떠오르면서 항상 웃음이 나요. 

-앞으로 다른 작품들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가요? 
지금까지 작품을 시작한 원동력은 제 결핍이나 불안이었어요. 현재 작업 중인 것도 거주 불안, 안전한 공간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했는데 여성 홈리스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여성 홈리스와 관객들을 잇는 다리로 삼기 위해 작품을 기획·개발하고 있어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꼭 완성하고 싶어요. 지금까지의 영화들은 제 내면을 뚫고 들어가는 이야기였다 보니, 지금 구상 중인 작품을 끝내고 나면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구체적으로는 여성 퀴어 운동 동호회를 팔로잉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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