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필름X젠더] <백야> 염문경 감독 인터뷰
“악몽 같은 백야를 빠져나와”
퍼플레이 / 2025-08-29
2025년 양성평등주간 온라인 상영회 [잇-다, 평등을 비추는 스크린]을 기념하여 필름X젠더 감독들의 인터뷰를 공개합니다. 그들이 전하는 뒷이야기를 통해 영화를 보며 궁금했던 지점들이 해소되기를 바랍니다 :) *해당 인터뷰는 2020년 10월, [필름X젠더] 단편영화를 활용한 성평등 교육 안내서 제작을 위해 진행되었습니다. |
Q. 이번 [필름X젠더]의 공모주제가 ‘일상 속의 젠더 문제’였다. 일상 속의 젠더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예술계 내 성폭력을 주제로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
A. 작가이자 배우로서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올해 초에 썼던 작품이 <백야>였다. 그런데 ‘필름X젠더’ 공모 주제와 너무 잘 맞았다. 예술계 내의 젊은 여성 배우, 그리고 사회 초년생으로서 몇 년간의 경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겪었던 불평등이나 폭력 등이 내 안에 많이 쌓여있었다. 근데 나뿐만 아니라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주변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상처를 받았다. 그게 기폭제였던 것 같다. 내가 겪은 일은 마음속에 묻어두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일들로 고통스러워하고 죄책감을 느끼거나 불안에 빠지는 것들을 지켜보면서 이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다.
Q. 기존의 시나리오에서 발전시킨 내용이 있다면.
A. 연대의 메시지를 좀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전에는 지혜라는 인물 개인의 모순적인 불안과 내면에 집중했다. 원래는 마지막 장면이 밤 장면이었고, 정아와 만나는 장면을 꿈이나 환상처럼 처리해서 악몽처럼 보이도록 편집하려고 했다. 뭐가 꿈이고 현실인지 모르게 뒤섞여 있는 모습으로. 근데 좀 더 현실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바뀌게 됐다. 지혜가 정아와 만나는 것이 현실에선 굉장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영화에서는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보여주고 싶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처음에는 캄캄한 엔딩이었다면 지금은 일말의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엔딩으로 바뀌었다.
Q. 초반 시나리오에선 결말이 어두운 분위기였던 건가?
A. 초반 시나리오에선 지혜가 남자친구 현진과 심하게 다투고 나서 갑자기 꿈처럼 정아와 만나는 장면에 빠지게 된다. 그 장면만 더 아름답고 비현실적으로 그려졌으면 했다. 처음에 생각했던 이미지는 쨍쨍한 뙤약볕 아래서 꾸는 악몽 같은 느낌이었다. 햇빛이 밝은 느낌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다른 사람들은 환한 대낮에 평화롭게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나만 아직 밤인 거다. 그런 꿈을 꾼 뒤 눈을 떴는데 역시 아직도 밤이고. 그 밤의 풍경들로 끝내는 게 처음 계획이었다.
필름X젠더 제작지원작 <백야> 스틸컷
그리고 술자리 장면은 최대한 지혜가 느끼고 있는 감각을 그대로 구현하고 싶었다. 시각적으로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 자리가 주는 압박감을 그리고 싶었는데, 나한테는 20대 때 술자리의 기억들이 그런 식으로 남아있다.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거나 술병이 쌓여있는 모습이라거나. 강력한 추행이나 어떤 말보다는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의 압박감이 더 표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시나리오 작업에 도움이 된 자료가 있다거나 업계 관계자 분들에게 자문을 구한 내용이 있다면.
A.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사건과 관련해서 지인 중 한명은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칼럼을 쓰기도 하고, 어떤 지인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증인들을 모으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것들을 계속 팔로우했다. 그리고 미투 이후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2년간 집단 우울증 을 겪은 것 자체가 자료조사였던 것 같다. 이윤택 사건 외에 조민기 사건도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아, 나는 예뻐했었는데 그런 사람이었다고? 말도 안 돼’라며 혼란과 부정을 겪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용기내서 고발했는데 그 사람이 죽어버려서 그 다음 매뉴얼을 준비하는 워크숍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런 일들을 보면서 내가 옛날에 겪었던 일을 자꾸 길어 올리게 됐다. 성희롱과 강제추행으로 고소했던 캐스팅 디렉터가 사망해서 재판이 없어진 일이 있었다. 배우로서 연극계나 영화계 내에서 고군분투하며 겪은 일들이 축적되면서 자존감이 낮아져 있었는데, 그 일은 너무 명백하게 그 사람이 잘못한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결단을 하고 고소를 했는데 사망 소식을 들었다. 거기서 어떤 충격을 받기보다는 그냥 빨리 넘어가고 싶었다. ‘그 사람이 진짜 죽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우린 전해 들었을 뿐이야. 근데 그 사람이 죽은 게 우리 탓은 아니야. 우리 탓일 리가 없지.’ 이런 식으로 넘어가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근데 이윤택과 조민기 사건으로 인해 내가 겪었던 일이 다시 떠오른 거다. ‘난 그때 이런 감정이었는데 지금 저 동료들은 어떤 마음들 속에서 헤매고 있을까’ 그런 생각에 같이 우울하고 아팠다. 그래서 그 두 시기의 경험들이 나에게는 자료조사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다.
Q.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소하고 난 뒤 주변인들이 보이는 반응이나 태도의 유형이 있을 것 같다. 그것들을 영화에 사실적으로 녹여내기 위해 참고한 자료나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A. 사례나 자료참고라고 물어보니까 잘 모르겠다. 내가 그냥 생각한 거라서. 너무 당연하게 일어나는 수순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이성애자고, 연애 중이다. 그럼 남자친구와 거의 100%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왜냐면 ‘너는 남자니까 이해 못해줘’라는 생각이 너무 자연스럽게 든다. 그런 부분이 피해자를 다시 괴롭게 하기도 하는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내 감정을 풀기 쉬운데 그러다 보면 상대방을 찌르게 된다. 그것으로 인해 ‘역시 나는 다른 사람을 찌르는 사람이야. 그래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거 아닐까?’라는 자기혐오의 악순환에 빠진다. 반면에 남자친구는 어떻게 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빠지고.
특히 지혜와 남자친구 현진이 연극계 내에서 존재하는 위치를 생각해보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갈등을 좀 더 정확히 보여주기 위해 현진은 가해자로 대표될 수 있는 연극계, 극단에 더 깊숙이 적응하고 있는 사람으로 그리려고 했다. 그래서 지혜가 ‘나는 겉돌고 있는데 내 편이라고 하는 사람은 사실 저 세계에 더 잘 속해 있고 적응해있다’는 생각으로 인한 거리감을 표현하려고 했다.
여자 선배인 인수는 남자로 설정하면 전형적인 ‘꼰대’로 그려질 것 같았다. 같은 여자라고 해도 젠더이슈나 성폭력 이슈에 대해 생각하는 결은 조금씩 다 다르잖나. 또 그게 세대차에서 오는 것도 크고. 그런 부분을 짚고 싶었다. 인수는 나름대로 지혜를 챙겨주는 선배다. ‘저렇게 해서는 참 힘든데’라는 생각에 안타까운 거다. 근데 지혜는 그의 말 속에 숨은 무신경을 하나하나 따갑게 느낄 수밖에 없다.
Q. 지혜는 박창환을 고소하고 난 뒤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면서도 박창환의 딸 정아를 궁금해 하고, 정아를 만나기 위해 애를 쓴다. 왜 지혜는 굳이 정아를 만나고 싶어 했던 걸까?
A. 초안에선 더 에피소딕하면서도 무언가를 추리하며 찾아가는 서사를 구상했었다. ‘박창환이 왜 죽었을까’를 찾아가는 서사였다. ‘그 사람이 죽은 게 나 때문일 수도 있어’라는 생각이 맴도니까 사실을 알아내야겠다는 집착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웬만하면 피하겠지. 너무 힘드니까. 근데 지혜는 연극계라는 커뮤니티 안에 계속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이나 눈빛들을 보면서 진실을 알아보고 싶은 욕망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중에 정아를 만났을 때도 자살인지 아닌지부터 묻는다. 그게 지혜라는 인물을 움직이는 추동력의 모티프였다.
필름X젠더 제작지원작 <백야> 스틸컷
Q. 집 앞에 찾아온 박창환에게 지혜가 할 말 다 하는 장면이 있다. 소위 ‘피해자다움’(피해자는 우울과 슬픔으로 인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등 피해자에 대해 우리 사회가 여전히 갖고 있는 편견을 부숴주는 것 같더라. 해당 장면을 촬영할 때 그런 것들을 염두에 뒀던 건가.
A. 당사자가 아니면 잘 이해할 수 없지 않나. 그래서 ‘지혜는 자기한테 득 될 것도 없는데 도대체 박창환을 왜 고소했을까? 복수심인가? 합의금을 받아내고 싶었나?’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내 경험을 돌아보면, 고소라는 큰 결심을 하는 데는 개인적인 복수심도 있겠지만 ‘이 사람은 이렇게 살면 안 돼. 벌을 받아서 그걸 좀 알았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이 가장 컸다. 직접 사과도 하고 돈까지 주겠다는데 뭐 때문에 지혜는 돈도 안 받고 사과도 안 받아 주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건 가해자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게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기에는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으니 여자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다르지 않나.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은 뉴스로만 어떤 사건을 접하는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Q. 벨마라는 인물을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A. 외국인으로 설정한 건 스토리 작법 면에서는 갑갑한 내용에 의외성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아울러 벨마는 그 세계 안에서 또 다른 타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혜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대상화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는 설득력을 부여하고 싶었다. 벨마는 아마 ‘난 이제 여기서 영원히 박창환을 고소한 터키 애로 불릴 거야’라는 생각을 할 거다. 그리고 벨마와 지혜가 둘이 함께 있을 때 갈등을 일으키거나 슬퍼하는 장면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또래 여자 친구들이 일상적으로 티키타카하는 것처럼 보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내가 실제로 고소할 때도 그랬고 큰일을 겪었다고 해서 매 순간 진지하고 괴롭고 힘들게 살지 않는다. ‘피해자다움’과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 이 친구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이겨내려 하고 있는 거다. 비록 한국을 떠나는 와중이지만 커피도 마시고 조잘조잘 얘기도 하고 욕도 하면서. 벨마와 지혜가 그 일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상처와 슬픔을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면서 일상을 살아가려고 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Q. 박창환은 술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을 하고 난 뒤 눈치를 살피고는 “이런 거 불편하면 얘기해줘야 돼. 무슨 말인지 알지?”라고 말한다.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뜻인데, 나중에 지혜의 집 앞에 찾아와서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괴로워한다. 모순적인 그의 태도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A. 박창환 캐릭터를 캐스팅할 때 인수 역할과 마찬가지로 유약해 보이는 걸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했다. 마초 같은 사람만 폭력을 가하는 게 아니라 상처 많은 예술가 타입의 어른도 충분히 폭력을 가할 수 있거든. 그리고 창환은 자기가 정말 뭘 잘못했는지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는 불편하지 않겠지? 우리는 지금 다 같이 예술가로서 얘기하고 있는 거잖아’라는 합리화가 이미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근데 자신은 위계를 가졌다는 걸 모르는 거다. 그래서 지혜와 벨마에게는 불편함을 이야기할 자유가 없다는 걸.
Q. 창환은 어떤 사람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나.
A. 성적인 맥락의 발언이 ‘얘를 희롱해야지, 꼬셔야지’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아, 분위기 너무 좋다. 즐겁다. 역시, 이 맛에 연극 하는 거지!’라며 진심으로 그 자리를 즐기고 있는 사람인 거다. ‘나는 나보다 한참 어린 딸뻘의 친구들하고도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그의 마음은 내 입장에선 정말 싫지만 그 사람은 진심일 거다. 악의 없이 즐거워하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근데 무지도 폭력 아닌가. 그래서 창환은 악의 없는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Q. 보통의 영화들에서는 성폭력 가해자의 가족을 보여주지 않거나, 등장시키더라도 가해자의 편을 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반면 정아는 다른 결의 태도를 지닌 인물이었는데, 정아를 그런 식으로 설정한 이유는 뭔가.
A. 지금의 나라면 모르겠지만 내가 청소년이었을 때라면 그냥 아빠 편을 들고 싶을 것 같다. 진실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만 아는 것이기에 우선은 내 가족 편을 들고 싶을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정아와 지혜가 만나는 장면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젠더이슈에 관해서는 저와 인수 세대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만큼 세대에서 오는 차이가 크다. 이 시대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훨씬 많아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정아는 그럴 가성을 염두에 두고 표현한 인물이다.
정아는 자기 혼자 엄청 싸우고 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아빠가 정말 그런 사람이었나? 아빠가 죽었는데 혹시 이 여자 때문일까? 이 여자는 이상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으로 지혜 주변을 배회했던 거라고 생각하고 썼다. 그리고 외적인 연출로 정아는 커트머리를 하고, 바지 교복을 입고, 농구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 것들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고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여고생도 어떤 면에서는 카테고리화 하는 것일 수 있겠지만, 치마를 입고 ‘여성스러운’ 학생에서 벗어나 있었으면 했다.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사회의 관습적인 젠더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친구로 보이길 바랐다.
필름X젠더 제작지원작 <백야> 스틸컷
Q. 인수는 박창환의 성범죄 사건을 언급하면서 알게 모르게 박창환을 두둔하는 말을 한다. 인수는 박창환과 더 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인 건가, 아니면 지혜와 더 가까운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학습해왔던 가부장제 의식을 토대로 자기도 모르게 그런 발언을 한 건가.
A. 인수를 통해 우리가 흔히 저지를 수 있는 미세한 2차 가해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했다. 정말로 조심하고 있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게 되는 거다. 후배니까 위하다 보면, 혹은 말의 날카로움을 줄이려고 눙치다 보면 ‘에휴, 씁쓸해’라 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게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그걸 한 번은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인물이길 바랐다. 정말로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적당한 위로만 하게 되잖나. 그 과정에서 자칫 말을 잘못 고르면 상대방은 그걸 곱씹게 되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언니들이나 선배들한테도 가끔씩 ‘어? 뭐가 지나갔지?’ 싶게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그런 순간들을 표현하고 싶었고, 별거 아닌 말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Q. 가이드북에서 꼭 다루길 바라는 내용이 있다면.
A. 가장 중요한 대사는 정아의 “사과하지 말라”는 대사다. 창환을 고소했던 일은 잘못된 게 아니다. 그것에 방점을 찍고 싶었기 때문에 사과하지 말라는 대사를 썼고 중요하게 들렸으면 했다.
Q. 어떤 분들을 대상으로 교육이 이뤄졌으면 좋겠나.
A. 위로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건 지혜의 입장과 가까운 분들이었다. 크거나 작게는 이런 일들을 겪는 사회 초년생 여자분들.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문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 아닐 확률이 높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남을 너무 배려하는 사람들일 확률이 큰 것 같다. 그런 사람들한테 ‘당신만 그렇게 고민하고 방황하는 게 아니다’라는 위로와 연대의식을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교육적으로는, 피해자를 보며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싶었던 사람 또는 특정 사건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한번쯤 지혜라는 가상의 인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체험을 해봤으면 좋겠다. 고소라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고소를 감행하는 이들이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알았으면 좋겠고, 그들이 계속해서 목소리 내는 이유는 폭력으로 인한 고통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으면 면 한다.
Q. 예술계 내 성폭력을 비롯해 우리사회 내 성폭력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A. 성평등에 대해 성별에 관계없이 비슷한 레벨에서 같이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많아지면 좋겠다. 어떤 개념이나 메시지가 머릿속에 들어있는 상태로 직업인이 되는 것과 아닌 것은 매우 다르니까. 누가 옆에서 “아, 감독님.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라고 제지했을 때 성평등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과 체득은 못했어도 머릿속에 있는 사람이 그 말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다를 테니까. 또는 농담의 바이브라도 섞어서 “그런 말 하시면 안 되거든요?”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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