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흩어진 이들을 위한 새봄의 노래

<꽃피는 편지>

최민아 / 2020-10-08


〈꽃피는 편지〉   ▶ GO 퍼플레이
강희진|2016|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한국|11분

세상 모두에게 저마다 주어지는 삶의 조건이 있다. 이는 자신의 의지나 바람 따위와 관계없이 형성되었지만, 나를 설명하는 어떤 대명사로 존재하며 삶의 한 축이 되어간다. 사람들은 그 축에 따라 살아가기도 하고, 생의 축을 스스로 옮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 나가는 자신의 순리는 사회의 역행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인종, 성별, 출신 등으로 대변되는 이 축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의 불평등을 야기시키고 누군가 생의 전반에 이를 가하기도 한다. 어느 쪽도 맞거나 틀림없이 자신의 삶을 일구어가는 것이지만, 축의 전환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분명 세상과 맞설 만큼의 각오와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현실의 무게를 짊어져야만 하는 어떤 삶이 있다.

〈꽃피는 편지〉 스틸컷

<꽃피는 편지>는 새로운 삶을 찾아 북한을 떠난 두 20대 여성의 남한 정착기를 담아낸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다. ‘탈북민’(실제 일상에서 이들이 듣게 되는 호칭은 더 제각각일 것이다)이라 불리는 ‘금’과 ‘은’, 두 사람의 목소리로 이야기는 전개되며 그 이야기는 흑백의 드로잉으로 펼쳐진다. ‘금’은 인생의 마지막 선택이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2011년 남한에 정착했다. 남한 사회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을 안고 건너왔지만 삶의 고단함은 다르지 않았고, 이는 곧바로 또 다른 현실이 되었다. ‘은’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지인의 권유로 2008년 남한에 정착했다. 경쟁이 심하다는 남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방향으로 사회복지사를 택했지만 이 또한 다를 수는 없었다. 영화는 두 사람이 증언하는 각자의 삶을 중심으로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살이를 그려나간다.

〈꽃피는 편지〉 스틸컷

두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있어왔던 또래 청년의 삶과 다르지 않다. 취업과 직장생활, 연애와 결혼, 어린 시절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같은 일상이 두 사람의 목소리를 타고 이미지가 되어 흐른다. 한국 사회에서 ‘탈북민’이라 하면 흔히 떠올리는 험난한 탈출기, 고달픈 생활고는 이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실체가 어떻든 한국 사회 내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북한 주민에 대한 이미지가 여전히 공고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남다른 존재로서 여기게 하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서 접속할 수 있게 한다.

남한으로 향하는 북한이탈주민은 한국전쟁 이후 꾸준히 존재하였고,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하게 증가하며 현재 3만3000명이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남한의 사람들은 이들 고향의 유년 시절이나 북한의 주체사상을 제멋대로 추측하며 계급을 형성하고 차별을 일삼아왔다. 이들에게는 이미 이곳 남한이 삶의 터전이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거두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최선을 다해 일하고 사랑하며, 친구와 가족이 그리고 일상이 생겨났다. 그렇게 이곳에서 희망을 바라보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 나갔고, 너와 나 모두가 그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임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이들을 구분 짓고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민낯 또한 이들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드러난다.

〈꽃피는 편지〉 스틸컷

사실적 접근에 기초하는 다큐멘터리와 상상력의 발현인 애니메이션이 결합한 이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는, 직접적인 시각화가 불가한 현실 또는 그 이상의 표현을 실현시키며 상호작용을 통해 다큐멘터리의, 혹은 애니메이션의 또 다른 가능성을 확장한다. 이 영화에서는 사회의 전면에 나서기 여전히 어려운 이들을 기록하고 보여질 수 있도록 하였고, 이를 통해 우리는 두 사람의 진솔한 삶과 감정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강희진 감독은 이러한 제작방식을 통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전작 <할망바다>(2012)는 제주 해녀의 삶을 구술에 따라 담아내었고, 현재는 첫 장편으로 제주 4•3의 기억을 증언하는 <메이 제주 데이>(가제)를 제작 중이다. 가려진 이들의 역사를 불러내는 강희진 감독의 세계는 이 고유한 제작방식을 통해 점차 깊이를 더하고 있다.

〈꽃피는 편지〉 스틸컷

이방인이 되기를 택한다는 것은 끝 모를 외로움과 희망을 동시에 수반하는 일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무지개처럼, 그리움을 담아 띄워 보내는 종이배처럼, 이들 마음속 ‘꽃피는 편지’는 그 날갯짓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으로부터 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삶의 축을 지켜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꽃이 펴야 봄이 온다”는 말처럼, 누군가에게는 어느샌가 봄이 왔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직 아득한 날들일 것이다. 한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세상의 시선에서 ‘다름’으로 규정되고 있는 이들 모두 우리 가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가고 있다. <꽃피는 편지>가 이들의 새봄을 바라며 전하는 희망과 위로처럼, 그렇게 우리 곁의 존재들을 떠올린다면, 세상은 아마 조금은 덜 외로워질 것이다.
페이스북 공유 트위터 블로그 공유 URL 공유

PURZOOMER

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 활동가

[email protected]


관련 영화 보기


REVIEW

퍼플레이 서비스 이용약관
read error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
read error

Hello, Staff.

 Newsletter

광고 및 제휴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