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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다

한 아파트의 일생이 꿈꾸는 더 나은 사회

<콘크리트의 불안>

유자 / 2020-10-08


〈콘크리트의 불안〉   ▶ GO 퍼플레이
장윤미|2017|다큐멘터리|한국|36분

장윤미 감독의 다큐멘터리 <콘크리트의 불안>(2017)은 1969년 서울 성북구 정릉에 세워진 ‘스카이아파트’의 철거를 담은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 스카이아파트는 조금 특별한 사연을 지녔다. 박정희 정권 당시 근대적 도시 계획의 일부였던 그것은 날림으로 지어져 일찍이 재난위험 시설로 지정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지는 불안에 주민들은 생존권 투쟁을 해야 했다.
하지만 스카이아파트는 동시에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아파트 곳곳에 쌓인 흔적들은 그동안 그것이 주민들과 함께 한 희로애락의 세월을 기억했다. 이처럼 이질적이고 복합적인 역사를 지닌 스카이아파트는 작품에서 마치 한 명의 인물처럼 기능한다. 48년이라는 세월동안 생과 소멸을 겪은 건물은 배경으로 타자화되거나 대상화되지 않고 오로지 그 자체로서 자신을 드러낸다.

〈콘크리트의 불안〉 스틸컷

<콘크리트의 불안>의 연출 방식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아파트를 담은 영상과 평행하게 흐르는 내레이션이다. 아파트 구석구석과 그 주변의 도시를 비추는 영상 위로는 음악도, 대사도 아닌 한 화자의 수필이 흘러나온다. 그 수필엔 스카이아파트와 같은 소규모 아파트에 살았던 어떤 화자의 어린 시절 추억과 가족, 친구들에 대한 단상이 담겨 있다.
영상 위로 흐르는 내레이션은 특정한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스카이아파트를 철거 위기에 놓인 이름 모를 공간이 아닌 하나의 장소로 변모시킨다. 내레이션 속 화자가 감독 자신인지 허구의 인물인지, 혹은 그 이야기가 픽션인지 사실인지 관객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시멘트 벽 위의 낙서, 복도에 놓인 화분, 썩어버린 감 등 아파트의 이미지는 내레이션과 호응함으로써 다소 씁쓸하면서도 그리운 기억이 담긴 추억의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소규모 아파트에 살았던 어린 시절, 친구 사이의 계급 차이, 가부장적 가정환경에 상처받고 소외받았던 내레이션 속 여성 화자의 이야기는 스카이아파트에서 살았을 법한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동시에 스카이아파트의 서사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콘크리트의 불안〉 스틸컷

근대적 도시 계획의 일환으로 지어진 스카이아파트는 건설 초기엔 사람들의 욕망의 대상이었다. 과거 이곳엔 도시의 주체가 되려는 부유한 사람들과 부유함을 좇는 사람들이 입주했다. 그리고 이들은 계급 상승을 위해 가부장제를 그 원동력으로 삼았다. 내레이션 속 화자는 새로운 아파트에 이사 왔던 때를 떠올린다. 그가 기억하길, 엄마는 새로 산 아파트와 아파트가 약속하는 미래에 들떴고 아빠는 주말도 없이 노동을 했으며 부모님의 맞벌이는 가족의 해체로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젊은 시절의 스카이아파트는 계급 상승 욕망이자 가부장제, 남성적, 자본주의적 도시 계획이 내재된 불안정한 실재였다.
하지만 나이 든 스카이아파트는 달랐다. 작품이 묵묵히 담은 철거 직전의 아파트는 기존에 그것이 암시했던 욕망과 폭력성이 전부 지워진 상태였다. 늙은 스카이아파트엔 더 이상 계급 상승을 꿈꾸는 중산층 정상가족이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도시의 주체가 되지 못한, 갈 곳 없는 사람들, 떠도는 개, 고양이, 새들만이 남았으며 아파트는 기꺼이 그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준다. 내레이션 속 화자 역시 젊은 스카이아파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아파트에서 행복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여성 화자는 공간이 표상하는 욕망으로 인해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소외된 이들의 보금자리가 된 늙은 스카이아파트의 이미지와 더 맞닿아있다.

〈콘크리트의 불안〉 스틸컷

낡은 스카이아파트를 향한 감독의 시선은 따뜻하다. 그는 사람을 제외한 채 건물의 모습만 카메라에 담음으로써 소외된 이들의 보금자리가 된 스카이아파트를 배경이 아닌 작품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현장음과 함께 비 내릴 때의 모습, 계절이 바뀌었을 때의 모습 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감독은 아파트의 흔적을 고스란히 기록한다.
하지만 <콘크리트의 불안>은 동시에 스카이아파트가 새로이 태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내레이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이미지는 ‘이’이다. 눈, 코, 귀, 입, 그중에서 제일 매력적인 입속의 ‘이’는 네모나게 서 있는 아파트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근육 없는 물컹한 아기의 몸에서 처음 난 딱딱한” 이는 무르고 평평한 땅에서 불뚝 솟아오르는 아파트의 모습과 닮아있다. 감독은 아파트를 ‘이’라는 대상에 겹쳐놓음으로써 도시와 공간의 의미를 질문하고 아파트가 사라진 자리에 더 튼튼한 이가 자라길 기원한다.

〈콘크리트의 불안〉 스틸컷

수필에서 ‘이’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아기의 잇몸에서 솟아오른 딱딱한 이는 낯설기도 하지만 신비롭기도 하다. 연약하게 자라난 젖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끙끙 앓고 툭툭 빠져버리고 그 자리엔 더 튼튼한 이들이 채워질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젖니를 얼마나 뿌리까지 잘 뽑는가 하는 것이다. 내레이션 속 화자의 엄마는 조급한 마음에 젖니를 빼다 중간에 이를 부러뜨린 화자에게 이는 뿌리까지 뽑아야 다음에 예쁘게 난다고 혼을 냈다. 그렇게 새로 자란 이는 말 그대로 영구치이기에 오래도록 지속되어야 하며 그만큼 튼튼해야 한다.
아파트도 비슷하다. 땅 위로 불쑥 솟아버린 건물은 낯설지만 사람들의 흔적이 쌓이면서 추억이 담긴 장소가 된다. 만약 튼튼하게 자라지 못했다면 그것은 불안정하고 위협적이기에 뽑힐 수밖에 없다. 대신 잘 뽑혀야만 한다. 실수와 상처가 담긴 이는 잘 뽑혀서 더 튼튼하고 안정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해야 할 것이다.

〈콘크리트의 불안〉 스틸컷

스카이아파트는 개발독재의 산물이자 근대적/남성적 도시 계획의 일부였다. 그것은 날림으로 지은 불안정한 건물이었고 그곳의 주민들은 붕괴위협에 시달렸다. 마치 불쑥 자라났다가 흔들리는 젖니처럼 스카이아파트 역시 새로 고침이 필요했다. 영구치가 예쁘게 나려면 젖니의 뿌리까지 잘 뽑혀야 하듯 앞으로의 역사와 사회, 그것을 품은 도시와 공간이 좀 더 튼튼하기 위해선 기존의 잔해들이 잘 정리되어야 했다. 그래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스카이아파트의 철거 장면은 그리 절망적이지 않았다. 어떤 이들의 삶의 터전이긴 했지만 곧 무너질 것처럼 불안정했고, 철거된다면 그 자리엔 새로운 공간의 가능성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성찰 없는 새로 고침만 계속되는 도시, 욕망의 새 아파트만 자꾸 생겨나는 도시에서 무너지는 스카이아파트는 새로운 공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구멍이 생긴 잇몸에서 새롭게 자라날 공간, 그것이 이루는 도시, 그 도시가 체현하는 역사와 사회는 좀 더 공동체 지향적이며 소외된 이들에게 포용적이어야 할 것이었다.

〈콘크리트의 불안〉 스틸컷

생과 소멸을 겪는 아파트는 자신이 소속된 도시의 생과 소멸을 이룬다. 또한 생과 소멸을 겪는 아파트의 모습은 생과 소멸을 겪는 사람과도 닮아있다. 결국 스카이아파트의 일생은 도시뿐만 아니라 불안한 콘크리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질문한다.
우리는 왜 태어나고 죽을까. 만약 그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할까. 그리고 그런 우리를 둘러싼 공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스카이아파트가 사라진 자리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튼튼하게 자라나야 할 것이다. 작품의 마지막, 감독은 스카이아파트의 탄생 연도와 철거 연도를 보여주며 마치 한 사람의 생애처럼 표현한다. 마지막 장면처럼 작품은 건물이 살아온 흔적과 그것의 소멸을 기록하고 긍정하며 이를 사람과 공간 전체로 확대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그 방향은 공동체를 생각하고 소외된 이들을 포용하는 더 튼튼하고 끈끈한 사회로 향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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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대학 교지편집부에서 활동.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콘텐츠 제작자 지망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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