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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빛>

김승희|영화감독 / 202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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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2018|애니메이션|한국|12분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기가 언제입니까?” 라고 누가 물어본다면 언제라고 대답하겠는가? 아직 인생을 다 살아보지는 않아서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안 온 것 같고,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 갈 시간과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부모님, 가정환경, 입시, 사회라는 큰 파도에 하염없이 휩쓸려 내려가는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가 중요했었다. 내 자아상이 불확실해서였을까?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나를 정의해줬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교실 안에는 라벨링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나에게 어떤 라벨을 붙이느냐에 따라 내가 정의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바깥에서 일어나는 부분이고, 내 안에서 겪어내는 내 자아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 괴리감은 그 시절 모두가 겪어나갔다. 

<빛> 포스터

스튜디오 애밍 제작, 김혜진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빛>(2018)은 고등학교 시절 모두가 느꼈지만 말하지 않았던, 친구들 사이 그리고 각자 내면의 그림자 속 분열과 분화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세 명의 친구가 등장한다. 희주, 도현, 지수. 한때 무리 지어 다녔던 세 사람. 그들 사이 겉으로 드러났던 이야기들 뒤편에 드리웠던 그림자의 부분을 각자의 목소리로 얘기한다.  

<빛> 스틸컷

희주는 일명 잘나가는 아이로 그려진다. 자칭 대학생이라는 남자와 연애도 한다. 반짝이는 게 좋고, 예쁜 게 좋은 희주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노라면 그 사이사이에 가려진 진심이 살짝살짝 들린다. 

지수는 학기 초 학급에 아는 친구가 없어 혼자 지내던 아이였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도현이네 무리에 속하게 된다. 비록 그 무리에 속해 지수는 소속감을 얻지만, 동시에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참고 지내야 했던 그 감정을 얘기한다. 

도현이는 그 시절 세 명 중 가장 큰 괴리감을 겪었다. 아마 이 셋 중에 도현이라는 캐릭터가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가장 뚜렷하게 했기 때문에 더 그러했을 것이다. 또 그 괴리감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용감한 방식을 택한다. 용기는 무엇인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도현이는 자신을 드러내고 친구 희주와 지수를 잃는다. 

<빛> 스틸컷

그 시절 친구 관계는 부모님, 선생님들이 이해 못 하는 감정들이 얽혀있고 단순하게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있다. 그래서 그런지 <빛>을 보고 나면 단순히 ‘그땐 그랬지’가 아니라 마음에 남는 그때의 친구들과 함께 얼기설기 엮인 감정들이 끌려 올라온다. 솔직히 행복하지는 않은 감정들이다. 그래서 성장통이라 불리는지도 모르겠다. 

<빛>이라는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가지 감정들을 생생하게 불러일으키게 만드는데, 거기에는 캐릭터 설정이 100% 허구가 아니라는 특이점이 있다. 크레딧을 보면 캐릭터 모티브가 되는 사람들이 언급된다. 2019년 아시아나 국제 단편 영화제에서 감독의 GV에 참석했을 당시, 실제 경험담들과 허구를 뜨개질하여 이 세 사람의 구조적 관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야기 속 세 명의 캐릭터에 더욱 몰입되고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빛> 스틸컷

또 하나의 눈에 띄는 강점이 있다면, 이 작품에서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이야기를 묘사하는 삽화 정도가 아닌,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희주가 “쫀쫀하죠” 하며 스타킹을 튕기는 부분이다. 실사영화와는 차별적으로, 통통 튀는 캐릭터의 성격을 가장 애니메이션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외 지수의 방에 과일이 나타나는 방식, 지수가 느끼는 감정적 힘듦을 시각화하는 방식, 도현이의 눈에 비친 깨진 친구 관계들을 면 처리로 시각화 한 부분들은 이 작품에 더욱 감정적 생생함을 부여한다. 

영화를 보면서 ‘아, 이 작품 좋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든 이들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이 시작점이라면 그 다음 작품은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빛>을 보고 나서 그랬다. 

<빛>은 2019년 국내 유수 영화제에서 경쟁작으로 선정되고, 국내 독립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인 인디애니페스트에서는 우수 데뷔작에게 선정되는 초록이상을 수상했다.  그러니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잘 타서 김혜진 감독과 스튜디오 애밍에서 또 좋은 작품을 들고 나오길 기다리는 이 열렬한 마음을 이렇게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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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심심> <심경> 등 연출, <피의 연대기> 애니메이션 작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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