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지루한 이야기’에서 뛰쳐나와 죽음에 승리하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김동령, 박경태 감독

퍼플레이 / 2022-01-20

#세상을_바꾸는_여자들
2022.1.12.|김동령, 박경태 감독을 만나다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홈페이지 바로 가기
▶ <거미의 땅>(김동령·박경태, 2016) 보러 가기

한 번 들어오면 빼도 박도 못하고 죽어야 나갈 수 있는 곳 ‘뺏벌’. 그곳엔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본 여자, 인순이 있다. 저승사자들은 뺏벌의 유령들을 데려가기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인순은 그들에게 맞서기 위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한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김동령, 박경태, 2022)는 기지촌 여성이었던 박인순의 삶에 상상력을 결합하여 극을 전개해나가고, 경기 북부 일대의 미군 기지촌 ‘뺏벌’을 배경으로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유연하게 가로지른다. 인순은 하루하루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어느새 자신의 기억이자 스스로 만들어낸 이야기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귀신과 저승사자의 등장은 언뜻 소멸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인순은 결코 죽음에 굴복하지 않으며 끝내 승리한다. 

김동령, 박경태 감독은 기지촌이라는 공간과 그 안의 사람들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오고 있다. 각각 <나와 부엉이>(박경태, 2003)와 <아메리칸 앨리>(김동령, 2008)를 통해 기지촌 여성의 삶과 그곳의 ‘현재’를 담아냈고, 공동 연출작 <거미의 땅>(2012)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최근작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서는 박인순이라는 인물의 불완전한 시공간 속으로 들어가 직접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복수를 행하는 인순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처럼 날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그날 찍은 걸 바탕으로 다음 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는 감독의 말마따나 영화는 생생한 날것의 기운을 가지는가 하면, 판타지를 바탕으로 장르적 연출을 시도한다. 이야기의 객체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한 여자가 직접 ‘지루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화자가 되어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두 감독을 온라인상에서 만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동령 감독 ©시네마달

박경태 감독 ©시네마달

-코로나 시대의 개봉이 쉽지 않은 점도 있고 새로운 점도 있을 텐데 소감은 어떠신가요. 
김동령: 이번이 두 번째 극장 개봉이에요. <거미의 땅>(2016) 이후로 5년 만이네요. 극장에서 다시 영화를 상영할 수 있다는 건 선물 같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극장에서 봐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만큼 영화관에서 많이들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두 분 모두 ‘두레방’이라는 기지촌 여성 지원 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시죠. 
김동령: 기지촌에 관한 영화를 계속 만드는 데 있어 두레방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경태 씨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 영향으로 주변의 소개를 받아 두레방과 연을 맺었어요. 두레방에서 컴퓨터 교실, 사진 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하다가 (당시) 여성부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죠. 저는 2004년도에 영화학교 졸업 후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때 영어 통역 아르바이트를 가게 됐는데 그곳이 두레방이었어요. 그때는 필리핀, 러시아 여성들이 기지촌에서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분들의 상담을 위해 통역할 사람이 필요했죠. 그래서 자원봉사를 하게 됐고 1년 반 정도 상담원 일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영화 <아메리칸 앨리>(2008)를 만들게 되었죠.

박경태: 학생운동 시절, 한쪽에서는 비정규직 투쟁을, 다른 한쪽에선 주한미군 범죄나 여성문제를 이야기했어요. 저는 기지촌 문제에 관심을 쏟으면서 두레방과 연을 맺게 됐습니다. 기지촌을 단순히 취재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된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럼 두 분은 두레방에서 만나게 되신 건가요? 
김동령: 맞아요. 제가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다닐 때 경태 씨가 두레방에서 만든 <나와 부엉이>(2003)라는 다큐멘터리가 화제였어요. 남자 감독이 어떻게 기지촌에 들어가 영화를 만들었을까 신기한 마음이었죠. 그리고 2년 후 제가 두레방에 가게 되면서 만나게 됐어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스틸컷 ©시네마달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어떻게 구상하게 된 작품인가요.
김동령: <거미의 땅> 촬영 당시 인순 언니가 폐지 위에 그림을 하나 그리신 적 있어요. 그림이 너무 좋아서 뭐냐고 여쭤봤더니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야”라고 대답하셨죠. 그 단어가 정말 경쾌하고 예뻤어요. 그래서 경태 씨와 함께 ‘다음 영화 제목은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게 2011년도였어요. 

<거미의 땅>을 끝내고 나서 다음 영화를 고민하던 중에 인순 언니가 딸을 찾아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언니가 남편과 딸의 이름 철자도 모르고 자기가 있던 지역도 정확히 기억을 못 해서 정보가 빈약했는데, 조사를 하다가 언니의 결혼증명서를 찾게 됐어요. 언니가 늘 말하던 시카고 주소가 기록돼 있었죠. 언니의 딸을 찾으러 가는 내용으로 기획서를 작성해 영화제에서 기획개발비를 받아 미국에 갔어요. 딸은 찾았지만 그분이 처한 상황이 좋지 않았고, 그 후 지금은 유보 상태에 있어요. 그때 미국을 간 김에 언니가 살았던 곳, 길거리에서 노숙하며 지냈던 곳, 정신을 잃었다는 하와이까지 가봤어요. 주먹구구식의 기억들을 토대로 서치하며 하와이, 시카고, 오클라호마까지 가게 됐죠. 그러면서 언니의 불완전한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순 언니를 안 지 20년이 됐는데 무슨 사건이 언제 일어났냐고 물어보면 20년 전 사건을 엊그저께나 몇 달 전에 일어났다고 말씀하세요. 기억이란, 장소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면서 이번에는 트라우마 때문에 불완전한 언니의 기억과 시공간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싶었어요. 다만 이번 영화가 <거미의 땅>과 달랐던 점은 인순 언니가 처음부터 조건을 걸었다는 거예요. 남편의 목을 잘라 끌고 가는 장면을 넣고 싶다고 했죠. 그 조건을 받아들여 영화가 탄생하게 됐어요.

-영화는 박인순 님의 생애사를 기반으로 픽션을 더해가며 이야기를 확장해나갑니다. 극의 흐름이나 구성에 인순 님은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셨나요. 
박경태: 인순 아주머니의 그림을 사이에 두고 오랜 기간 대화를 나눴어요. 그 후에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눴고요. 아주머니는 글을 모르시니까 단편적이고 인상적인 이미지에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투여시키면서 이야기하세요. 문자의 세계를 기준으로 보자면 서사적인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죠. 하나의 외침, 지시, 감정 표현 정도이기 때문에 아주머니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대화가 필요했어요. 아주머니가 지금까지 봐왔던 수많은 동료들의 죽음과 자신이 느낀 귀신의 존재,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림들, 최근에 보고 있는 저승사자 등을 모자이크처럼 영화에 배치했어요.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아주머니에게 보여주고 다시 피드백 받는 방식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죠.

<거미의 땅> 때부터 아주머니와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이야기를 구성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도 자기가 만든 세계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계셨고, 자신의 기억 속을 관찰하거나 그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표현하셨어요. 부산영화제에서도 어떤 관객이 아주머니에게 왜 이렇게 연기를 잘하시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질문에 ‘이건 연기가 아니에요’라고 답하셨거든요. 맞아요. 그건 연기가 아니죠. 자기 기억 속에 서 있던 거였으니까.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스틸컷 ©시네마달

-픽션의 영역에서 인순 님이 보여주는 얼굴은 배우의 얼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장면들을 어떻게 촬영하셨는지, 어떤 디렉팅을 주셨을지 궁금했는데 그런 일화가 있었군요. 
박경태: 전문적인 연기술을 습득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디렉팅을 하면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봐왔던 것을 모사해요. 그럼 굉장히 유치해지죠. 팔로우업(피사체를 따라가며 찍는 방식) 다큐는 자신의 인생이 남에게 관찰되는 것이고, 그 안에서 연기를 하면 자신의 행동을 모사하는 것에 불과해요. 그런데 그 사이의 어떤 것을 인순 아주머니는 만들어내죠. 

-영화에서 인순은 강해서 살아남은 여자, 누구보다 씩씩하게 걸어 다녔기에 죽음도 쫓아오지 못한 여자로 설명돼요. 그런 여자가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온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인순은 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건가요. 
김동령: 기지촌과 죽음은 굉장히 가까운 사이예요. 기지촌 여성들은 미군을 받을 때마다 살해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인순 언니도 그런 죽음과 관련된 경험이 많다 보니 죽음을 여러 버전으로 상상하는 것 같아요. 영화에도 언니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나와요. ‘내가 죽으면 독수리가 돼서 나를 괴롭힌 사람들의 눈알을 파먹어 줄 거야. 내가 죽기 전에 뺏벌에 불을 질러 버릴 거야. 나는 아무도 모르는 산에 가서 죽을 거야. 꼬랑창(시궁창)에 빠져 죽을 거야.’ 저희가 충격을 받았던 점은 언니가 자신이 늙어가고 있음을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거미의 땅>을 찍을 때만 하더라도 그림에 저승사자가 없었거든요. 근데 영화를 끝내고 나서 언제부턴가 갑자기 그림 안에 저승사자가 나타났어요. 꿈만 꾸면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자꾸 자기를 쳐다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영화는 언니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어요. 언니의 의지와 욕망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죽음에게 영원히 승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보통 저승사자는 인간이 뛰어넘을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로 그려지곤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고 망자를 데려가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인순이 그에 대항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구조도 그렇고요.
김동령: 전통적인 설화나 우화를 보면 산 사람들이 저승사자를 속이거나 수명을 흥정하는 내용도 많아요. 옛날 사람들은 죽는 시기를 흥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인순 언니도 ‘저승사자보다 아직은 내가 더 힘이 세!’라고 말하거든요. 한국의 전통 설화에 나오는 저승사자와 언니가 생각하는 저승사자의 이미지가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언니가 말한 저승사자를 영화에 어떻게 등장시킬까 고민했죠. 저승사자가 있다면, 죽음이 기록되지 않은 기지촌 언니들을 사후세계로 데려가기 위해 기록을 중요시하는 공무원적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스틸컷 ©시네마달

-영화에는 기지촌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그곳을 대하는 방식이 대비되는 장면들이 등장하죠. 젊은 미술작가가 뺏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으로 기록하는 장면과 인순이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장면인데요. 그 장면의 교차를 통해 기지촌이 미술작가에겐 전시에 활용할 수 있는 재료인 반면, 인순에겐 삶의 터전임을 대비시켜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김동령: 미술작가는 기지촌에 대해 글을 쓰거나 이슈를 만들고자 하는 외부인을 상징하는 존재예요. 그 사람들은 대부분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것을 효율적으로 얻기 위해 리서치를 하고 증언을 받아 가거든요. 기지촌이 가진 고유의 감각이나 이야기들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져가고 있는가,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미술작가가 사진을 찍다가 ‘꽃분이’를 발견하고 도망가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어요. 잘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혐오가 그렇게 생겨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했고요.
박경태: 꽃분이는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은, 이야기되지 못한 이야기의 표상이에요. 전국의 기지촌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무연고 묘지인데, 화장 시스템이 생기기 전인 6~70년대에는 가족이 없거나 사회적으로 비천하고 낙인찍힌 대상들은 죽으면 그냥 버려졌어요. 저희 영화에 나온 뼈다귀 이야기처럼, 한곳에 파묻어서 집단 매장되는 경우도 있었고요.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 죽으면 강이나 천에 버리는 경우도 많았어요. 경기 북부에서 꽃분이라는 비석을 발견했는데, 동료들이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만든 비석으로 추정돼요. 그렇게 발견한 것이 두세 군데 정도 되죠. 이쁜이, 꽃분이, 금순이 이런 식으로 누구의 이름도 아닌 이름을 거칠게 써서 세운 거예요. 기적처럼 남겨진 흔적이죠. 그런 사실들을 기반으로, 인순 아주머니나 동료분들이 말한 ‘골목을 헤매는 여자’를 합쳐 꽃분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꽃분이가 등장하고 나서 인순이 본격적으로 옛 동료들과 만나잖아요. 그래서 꽃분이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일 수도 있고, 미술작가와 같은 이들에게는 ‘당신은 외부에서 몰래 들어온 관찰자’라는 인식을 던져주는 장치도 될 수 있죠.

-영화에는 여자의 웃음/울음소리가 여러 번 등장해요. 기괴하면서도 구슬프고, 한편으론 어딘가 또는 누군가에 닿길 바라며 울부짖는 분노의 소리인 것 같기도 합니다.
박경태: 인순 아주머니가 <거미의 땅>에서도 비명을 지르시거든요. 아무리 말을 해도 누구도 자신들의 입장이나 관점에서 생각하거나 봐주지 않으니까 결국 우리에게 와 닿는 건 그런 외침인 거예요. 살려달라는 외침 같기도 한데, 표면적으로 봤을 땐 분노로 표현되니까 무섭고 공격적이죠. 동네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혐오의 빌미가 되기도 해요.

김동령: 비명이나 웃음소리가 인순 언니에게는 소통의 한 방식이에요. 옛날에는 멀쩡한 정신인 적이 거의 없고 울부짖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뺏벌에 가면 이틀에 한 번은 취해서 소리를 지르며 다니는 걸 볼 수 있었어요. 술 취해서 두레방에 오면 울거나 식칼을 들고 다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박경태:
대부분 그런 분들은 알콜 중독이나 여러 이유로 빨리들 돌아가세요. 그런 행동이 심해지는 게 죽음이 다가오는 신호거든요. 기지촌마다 그런 분들이 계셨어요. 그런데 인순 아주머니만 유일하게 그 지경까지 갔다가 돌아왔어요. 밤마다 산에 올라가서 나무에 칼을 꽂으며 분노를 풀고 낮에는 풀 뜯으러 다니며 점점 나아졌죠. 증상이 심해지다가 비참하게 돌아가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보통 다른 분들은 그런 죽음을 보면 자신도 그렇게 될까 봐 깊이 숨어버리거나 재수 없다고 입에조차 올리지 않아요. 그런데 인순 아주머니만 유일하게 계속 이야기하세요. 회피하지 않는 용기가 있는 거죠.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스틸컷 ©시네마달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내재된 강함이 근원인 걸까요. 
김동령: 언니는 굉장히 특이해요. <거미의 땅>에 출연하신 안성자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고아임에도 어렸을 때 자기를 버리던 엄마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주장하세요. 60세가 넘어도 엄마에 대한 판타지, 그리움과 애증의 감정을 갖고 있단 말이에요. 근데 인순 언니는 그렇지 않아요. 저희가 ‘언니는 언니를 버린 엄마나 아버지 생각을 해본 적 없어?’라고 물었더니 없다고 하셨어요. 버림받아서 재수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할 뿐 엄마를 왜 그리워하냐고요. 

-개인마다 성격이나 성향에 따라 이겨내는 방식이 다른 거군요.
김동령: 맞아요. 근데 인순 언니 같은 사람은 정말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질리지 않고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언니는 굉장히 주체적이에요. 영화를 만드는 일도 자기가 원하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이야기하거든요(웃음). 나는 너희가 좋고 함께하는 게 재밌지만, 나를 힘들게 하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쿨한 태도를 갖고 계세요. 

-오랫동안 영화를 통해 기지촌 이야기를 해오신 만큼 그 문제에 대한 의식도 남다르실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기지촌 문제와 피해생존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이야기해나가기를 바라시나요.
김동령: 저희가 기지촌 문제를 알리거나 그곳의 역사를 더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든 건 아니에요. 그런 태도는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만들어온 영화는 그것과는 관계가 없어요. 물론 영화에서 기지촌에 관한 담론은 다루죠. 윤금이 사진이라든가, 영화에 등장하는 미술작가나 저승사자로 대변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이야기로 기지촌을 프레임화하려는 시각에 대해서 논한다든가. 하지만 기지촌 문제를 사회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는 것은 저희의 관심사는 아니에요. 저희 영화는 기지촌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기지촌 담론에 관한 영화죠. 기지촌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질문은 기지촌 여성들을 하나의 프레임 또는 혹은 어떤 목적을 가진 담론 속에 귀속시키기 위한 질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질문에 우리가 답할 권리는 없어요. 감독으로서의 역할과 목표는 여러 이야기 안의 불균질한 것들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순 언니야말로 권력을 지닌 자들에게 포섭되지 않는 캐릭터를 갖고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가 믿는 것, 상상하는 것, 살아온 방식이 권위적인 기존 질서 또는 ‘지루한 이야기’에 포섭되지 않는 영역에 있어요. 인순 언니가 주는 즐거움과 그 매력을 많은 분들이 발견해주시면 좋겠어요.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이 있나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김동령: <거미의 땅>에 출연한 박묘연 님의 소개로 필름을 하나 입수했어요. 1969~1970년도 당시 파주에 파견됐던 미군이 촬영한 필름인데 기지촌 모습이 정말 생생하게 담겨 있죠. 우리가 늘 상상만 해왔던 언니들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어요. 외부의 저널리스트나 사진기자가 몰래 찍은 게 아니라 미군의 홈비디오에 기록된 모습이기 때문에 미군과 한국 여성 간의 관계를 추측해볼 수도 있고요. 사랑 이야기가 몇몇 들어있기도 해서 이번에는 기지촌의 사랑, 로맨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포스터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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