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이미화의 영화처방] 좋아하는 일로 무언가 해보고 싶은데 자꾸 흔들리는 당신에게

<줄리 & 줄리아>

이미화|에세이 작가 / 2021-01-21


누군가 나의 기분을 이해해주기를 바란 적 있나요? 나와 꼭 닮은 영화 속 주인공에게 공감했던 적 없나요? 영화를 통해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고 또 위로와 공감의 말을 건네고자 합니다. 위안이 필요한 순간, 이미화 작가의 ‘영화처방’을 찾아주세요.
오늘의 고민사연 : 구직 활동을 하며 20대의 막바지를 보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코로나로 취업이 늦어지면서 마음은 불편하지만, 평소에 미루어 왔던 요리도 배우고 취미생활도 하며 지내고 있어요. 언젠가는 좋아하는 일(요리)로 돈을 벌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래도 문득 문득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네요. 좀 더 가열차게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아니면 남들처럼 자기계발이나 주식이라도 공부해야 하는 건지, 20대 후반에 좋아하는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게 허황된 생각인 것 같기도 하고요. 시간 낭비는 아닌지.. 중심 잡힌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런 척할 뿐 계속 흔들리는 기분입니다.

〈줄리 & 줄리아〉 포스터

영화 에세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어려서부터 꿈이 작가였냐는 질문도요. 
고백하자면 나는 무언가에 끈덕지게 매달려본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꿈을 이루고 싶다는 열망으로 피눈물을 쏟거나 취업을 위한 스터디, 자격증 준비를 해본 적도 없지요. 대학교도, 직장도 되는 대로 적당히. 적당히 기대하고 적당히 실망하며 20대를 보냈다고 해야 할까요. 영화도 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결과를 바라고 영화를 좋아한 것이 아니었어요. 영화에 나오는 대사가 좋아서,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이 좋아서 꾸준히 아카이빙을 해온 것이었지요. 

〈줄리 & 줄리아〉 스틸컷

9.11 관련 문제를 처리하는 말단 공무원인 줄리(에이미 아담스)의 어릴 적 꿈은 소설가였습니다. 8년간 알바를 전전하며 소설을 썼지만 출판해준다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뒤로는, 현실에 발 묶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보다 월등히 잘 나가는 친구들의 무시와 엄마의 잔소리, 전화로 불만을 쏟아내는 사람들 때문에 지쳐가는 줄리에게 일상의 활력이 되는 취미가 있다면, 그건 요리일 겁니다. 

“블로그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탈출구야. 요리하면서 활력 찾듯이. 줄리아 요리책을 실습해가면서 그걸 블로그에 쓸래. 대신 마감일이 필요해. 안 그럼 이것도 중간에 포기할 걸. 끝까지 해낸 게 없잖아.”

〈줄리 & 줄리아〉 스틸컷

블로그에 연재할 소재를 찾던 줄리는 365일 동안 미국인들의 전설적인 프렌치 셰프,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의 요리책에 나오는 524가지 레시피에 도전하기로 합니다. 이름하야 ‘줄리&줄리아 프로젝트’. 물론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이 도전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봐주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이 일이 도대체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제 서른이야. 끔찍할 줄 알았는데 줄리아 덕분에 씩씩할 수 있겠어.”
대단한 요리사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줄리는 스스로를 실패한 작가라거나 주의력 결핍증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어요, 거기다...

“누가 온다는지 알아?”

<뉴욕 타임즈>에 인터뷰 기사가 실린 후에 기사를 본 출판사는 물론 영화, TV 시리즈, 토크쇼 등에서 제안이 쏟아집니다.  

〈줄리 & 줄리아〉 스틸컷

한편 1950년대 프랑스. 남편과 함께 파리로 이주한 후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할지 고민하던 줄리아 차일드는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해 프랑스 요리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중년의 나이, 언어 장벽, 곱지 않은 시선과 고정관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 앞에 서서 요리를 하는 그 순간을 행복해합니다. 

“난 천국에 있는 기분이야. 평생 할 일을 찾아왔는데 드디어 찾았어.”

그런 줄리아 차일드의 노하우가 담긴 책 『프랑스 요리의 달인 되는 법』에 도전하는 줄리의 일상이 담긴 이야기가 영화 <줄리 & 줄리아>입니다. 줄리와 줄리아는 위대한 작가나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요리를 시작한 게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요리는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자 지루한 일상에서의 탈출구였지요. 

〈줄리 & 줄리아〉 스틸컷

“she saved me.”
“you saved yourself.”

줄리는 말합니다. 줄리아 차일드가 자신을 살렸다고요.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자신을 물 밖으로 꺼내 주었다고요. 하지만 줄리를 지켜본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줄리를 살린 건 그녀 스스로라는 것을요. 

“줄리아가 요리를 배운 건 남편과 음식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죠. 그러다 인생의 즐거움을 알았고요. 저도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줄리 & 줄리아〉 스틸컷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물론 목표 설정도 중요하겠지요.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고난과 시련을 견뎌내 끝끝내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적당한 즐거움이야 말로 꾸준함의 원천이라고 생각해요. 힘을 빼고 좋아하는 일, 즐거운 일을 하는 그 순간에 집중한다면 그 결과가 꼭 취업이나 금전적인 보상으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일상이 조금은 풍요로워지니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혹시 또 모릅니다. 줄리가 365일 동안 524가지 레시피를 완성하면서 느낀 즐거움과는 별개로, 이 영화가 실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줄리 파웰은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2005년 『줄리 앤 줄리아』를 출간했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내는 지금의 시간들이 당신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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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을 잇는 공간 <영화책방35mm> 운영. 영화 에세이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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