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흐르는 기억과 시(詩) 한 편

<저 소리 부분을 지워 버릴 것입니다>

김승희|영화감독 / 2020-09-10


〈저 소리 부분을 지워 버릴 것입니다〉   ▶ GO 퍼플레이
전하영|2016| 실험,  애니메이션|한국|14분

〈저 소리 부분을 지워 버릴 것입니다〉 스틸컷

상영이 시작되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 이 영화 좋아’라는 촉이 오는 작품들을 만난 기억이 다들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촉을 유발하는 작품들은 마무리까지 실망시키지 않는다.〈저 소리 부분을 지워 버릴 것입니다〉(전하영, 2016)가 나에겐 그런 작품으로 다가왔다.

“균형을 잘 잡는 일이 내게는 참 어렵다.” 한 여성이 이 문장을 읊으며 영화가 시작될 때, 그 촉이 왔다. 이 영화가 좋다고. 그것이 감성과 이성의 균형이건, 일과 삶의 균형이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균형이건 간에 이 한마디 말에서 공감과 위로가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윤석남 작가. 사진 출처: 옆집예술(http://g-openstudio.co.kr/portfolio_page/ysna/)

이 영화에 대해서 더 깊이 이야기하기에 앞서 언급해야 할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윤석남 작가다. 조금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그가 지나온 삶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 한국 사회는 그를 규수 작가, 주부 화가라고 불렀다. 이제는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가 된 그이다. 1939년에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이후에는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열렬히 사랑해서 한 결혼이었고, 집안은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으며 딸도 한 명 낳았다. 하지만 홀로 밥을 지으며 출장 간 남편을 기다리고 시어머니를 모시던 그때, 그의 내면에는 공허함이 가득했다. 시어머니를 모셔야 했기에 집안 살림을 해나갔을 뿐, 당시 마음속에는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희망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마흔 즈음 되어서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뒤늦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 40년째 작가로서의 삶을 이어오고 있으며 2019년에는 팔순을 앞두고 개인전을 열었다. 

〈저 소리 부분을 지워 버릴 것입니다〉 스틸컷

다시 작품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서 이 영화는 윤석남 작가가 2000년~2003년 사이에 작업한 160여 점의 드로잉 옆에 쓰인 일기 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한 노트들 중 작가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삶이 어우러지는 열네 편을 추려 윤석남 작가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작업이다. 앞서 언급한 그의 삶과 그가 겪었던 죽음 같은 공허함을 생각해 보면서 이 작품을 들으면 어느샌가 그의 한 문장 한 문장을 마음에 아로새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청각적인 요소, 내레이션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래서 〈저 소리 부분을 지워 버릴 것입니다〉라는 제목이 반어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의 시각적인 요소는, 뒤에서 좀 더 얘기하겠지만, 관객들에게 어떤 내러티브를 전달하기보다는 개념적인 장치로 기능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이들은 귀에 들리는 내용에 더 의존하며 이 작품의 에너지를 수용하게 된다.

〈저 소리 부분을 지워 버릴 것입니다〉 스틸컷

내레이션은 영상보다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되어 있으며, 마치 한 편의 시를 낭독하는 것 같다. 시에는 치유의 힘이 있지 않던가? 이 내레이션도 듣는 이로 하여금 어떤 문학적 치유를 경험하게 한다. 그의 이야기에는 불완전함이 있다. 그네, 허공에 매달리기, 사막 위의 고래, 정신을 잃는 꿈, 낯선 방 등의 비유로 드러나는 인간적인 어떤 불완전함이 들린다. 거기에는 쪼글쪼글한 감과 언 배추로 비유되는 외로움이 있다. 윤석남 작가는 이 불완전함과 외로움을 이겨내야 할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같이 살아가는 자신의 한 부분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또 그 속에는 다정함이 있다. 친구가 하는 말에서, 딸이 작가인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샘을 긷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에서 그리고 상가(喪家)에서 주변인들이 죽음을 다루는 방식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서 삶에 대한 애정이 전달된다. 나아가, 많은 사람들을 품고 싶은 그의 큰 마음 그릇도 느껴진다. 

〈저 소리 부분을 지워 버릴 것입니다〉 스틸컷

이 작품의 시각적인 요소는 내레이션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청각적인 요소에서는 어떤 내러티브가 존재한다면 시각적인 요소인 영상은 상당히 개념적인 작업이다. 그리하여 영상에서 윤석남 작가의 존재는 살짝 뒤로 물러나고 전하영 감독의 실험적인 시도가 전면으로 나온다. 전하영 감독은 2014년에 만든 〈프레임 워크〉라는 작품에서도 시간이라는 선형적 흐름 속에서 이미지를 해체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 실험은 〈저 소리 부분을 지워 버릴 것 입니다〉에서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영상은 윤석남 작가의 작업실과 그의 작품들을 찍은 비디오 영상이 재생되는 화면을 재촬영한 것이다. 그것을 통해 감독이 드러내고 싶었던, 겹겹이 쌓인 시간의 레이어에 따라 변질되는 기억이라는 소재의 특성이 나타난다. 만약 윤석남 작가의 회화나 설치 작업물들을 뚜렷한 이미지로 보고 싶었던 관객은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비디오 영상을 재촬영하면서 본래의 이미지는 왜곡되고 뿌옇고 불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을 총체적으로 본다면 윤석남 작가의 기억의 조각들이 시간이 정지된 일기나 노트를 넘어서서 다시 선형적 시간의 흐름이 흘러가는 영상이라는 물질로 구현화된 점에서 감독이 작업적 성취를 이뤘다고 볼 수 있겠다. 

〈저 소리 부분을 지워 버릴 것입니다〉 스틸컷

기억이라는 소재를 생각하면, 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는 아무래도 갤러리가 아닐까 싶다. 화이트 큐브의 한쪽 벽면에 프로젝터가 영상을 쏘고 싱글 채널 오디오가 그 공간을 윤석남 작가의 목소리로 가득 채울 것이다. 폐쇄적인 영화관과 달리 미술관은 좀 더 개방되어 있어 상영환경이 계속 변화하고 관객은 중간에 들어왔다 나갈 수 있다. 변화요소가 많은 상영환경이 기억이라는 가변적 소재에 더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는 맨 처음 언급했던, 상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품과 한 눈에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하기 어렵다. 

관객들은 집에서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이 작품을 관람하게 될 텐데, 그 경우에는 내가 맨 처음 느꼈던 그 공감과 위로의 감정을 보다 쉽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이라는 소재보다는 윤석남 작가의 한 편의 시 같은 내레이션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품을 보실 분들에게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 마음을 열고 작가를 자신의 마음속으로 먼저 초대하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 그러면 팔순이 넘은 작가가 가졌던 인간적인 외로움과 삶에 대한 애정 어린 말들이 마음속으로 한 걸음 깊이 걸어 들어올 것이다. 
이 작품을 보게 되는 다른 관객들도 내가 받았던 위로를, 삶의 외로움에 대한 공감을 느끼길 바란다. 그리고 작품의 화자인 윤석남 작가와 교감을 나누는 14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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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심심> <심경> 등 연출, <피의 연대기> 애니메이션 작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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